칼럼

[박종홍 칼럼]반복되는 선거구 파행, 더는 국회에 맡겨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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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 선거구 투표 41일 남겨두고 확정
1년전 확정 2015년 시행, 한 번도 안 지켜
조악한 선거구 획정에 부작용 갈수록 커져

박종홍 논설위원

2016년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구는 투표 42일을 남겨두고 확정됐다. 당시 도내에서는 5개 시·군이 묶인 공룡선거구 2곳이 나왔다.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 지역구의 경우 면적(5,697㎢)은 서울의 10배, 최소 면적 선거구인 서울 동대문을의 948배에 달했다. ‘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 지역구는 군청 소재지만 도는 데도 6시간 이상 걸렸다. 광활한 면적에 선거운동 시간마저 촉박하다 보니 선거일까지 많은 유권자가 후보자 얼굴 한번 보지 못한채 투표를 해야 했다. 그리고 4년후인 21대 4·15 총선에서는 명칭만 있고 유권자는 단 1명도 없는 기이한 춘천-철원-화천-양구 갑 선거구가 등장했다. 투표를 불과 39일 남겨두고 나온 결정이었다. 분구 대상이었던 춘천이 남북으로 나눠지면서 강북지역은 철원, 화천, 양구와 합쳐졌다. 하지만 춘천 강남지역은 철원, 화천, 양구 유권자는 하나도 없는데 명칭이 춘천-철원-화천-양구 갑 선거구였던 것이다. 철원, 화천, 양구 유권자 입장에서는 유령 선거구다. 다시 4년이 흘렀다. 그동안 선거구 획정에 대해 많은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번에도 4·10 총선 41일을 앞두고 국회가 의결한 선거구는 종전대로다.

-당리당략에 비례 1석만 감소

선거구 획정이 4년마다 파행을 반복하는 것은 거대 양당의 당리당략 때문이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당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제시한 안은 서울·전북에서 각각 1석을 줄이고 인천·경기에서 1석씩 늘리는 안이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텃밭인 전북 의석 축소를 수용할 수 없다며 국민의힘 강세 지역인 부산 지역구를 줄이자고 요구했다. 의석수 유불리를 따지던 여야는 결국 비례대표 의석을 1석 줄이는 엉뚱한 거래를 주고받았다. 특히 원안에 없던 특례구역 5곳을 지정하며 도내 선거구는 여기에 넣었다. 20대 국회가 공룡 선거구를 피하기 위해 ‘하나의 자치구·시·군의 일부를 분할하여 다른 국회의원 지역구에 속하게 할 수 없다’는 선거법 조항까지 개정해 춘천-철원-화천-양구 갑·을로 누더기 선거구 획정을 한 전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획정위 안이 여야 협상 과정에서 변질되면서 ‘야합’이라는 비난과 함께 이해득실에 매몰된 정치권이 더는 선거구 획정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1954년 하토야마 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는 개헌(자위대 창설 목적) 정족선인 의석수 3분의 2를 확보하기 위해 소선거구제로 바꾸고 선거구를 이리저리 칼질했다. 그러나 비난 여론이 들끓어 2년 뒤 폐지됐다. 아일랜드에선 1973년 당시 지방행정장관이던 제임스 털리가 수도 더블린과 주변지역 선거구를 멋대로 쪼갰다가 실패했다. 아일랜드는 이듬해 선거법을 고쳐 행정구역을 가르는 선거구 획정을 금지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강원지역은 1996년 15대부터 2020년 4·15 총선까지 24년 동안 선거구가 다섯 번 재조정됐다. 18개 시·군은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정치권의 입맛에 따라 지역 정서나 생활권과는 관계없이 이리저리 칼질 당하는 수모를 당해 왔다. 또한 현행 공직선거법에는 독립기구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국회의원 지역구를 획정하고, 국회는 선거 1년 전까지 이를 확정하게 돼 있다. 그러나 2015년부터 시행된 이 법을 국회는 한 번도 지키지 않고 있다.

-미국 등 지역 등가성 반영

조악한 선거구 획정의 부작용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은 퇴색되고 선거는 오히려 지역간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모양새다. 유권자의 좌절과 상실감은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4년 헌법재판소는 현행 선거구 획정 기준에 대해 인구 상하한선을 3대 1에서 2대1 이하로 바꾸라고 했다. 하지만 재판관 9명 가운데 소수의견을 낸 3명의 재판관은 “인구편차를 조정하면 지역 대표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농어촌 의원 수는 감소할 것이 자명하다”고 했다. 인구 감소 시대를 사는 지금 그들의 통찰력이 가슴에 더 와닿는다. 미국 등에서 지역의 등가성에 기초한 상원을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거구는 인구, 행정구역, 지세, 교통, 기타 조건을 고려해 획정돼야 한다. 1년간 정쟁만 일삼다 허둥지둥 선거구를 획정하는 국회다. 이대로라면 다음 총선에서도 최악의 선거구를 피할 수 없다. 정치적 이해에 따라 선거구가 불합리하게 조정되는 폐해를 막기 위한 논의를 당장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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