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원포럼]꽃들은 다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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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국제 정세가 여전히 혼란 속에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째 이어지고 있고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분쟁은 두 나라를 넘어 이란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세계의 모든 눈이 확전(擴戰)만은 안 된다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지만, 당사국들은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하는데, 만약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면전(全面戰)으로 치달으면 우리나라가 받는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이는 모든 전문가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만으로도 우리나라의 물가가 크게 올랐다. 만약 이스라엘과 이란이 맞붙는다면 이란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공산이 크다고 하는데,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원유의 70%가 지나가는 곳이다. 우리나라에 오는 원유도 상당량 이곳을 통과한다. 전쟁과 동시에 국제유가는 치솟을 것이고, 그러면 자원 없이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게 자명(自明)하다. 21세기 석유파동이 재현될지도 모른다.

미국이 과연 참전할까? 이스라엘의 아이언돔(Iron Dome) 성능이 어떤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을 때가 아니다. 국제 정세는 이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위태롭다. 국내 상황은 어떤가? 지난 4월10일, 몇 달간 나라를 들썩였던 22대 총선이 끝났다. 결과는 모두 아는 바와 같다. 하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는 여전히 접점을 찾을 수 없고, 정치 지형 역시 양쪽으로 나뉘어 분노와 혐오를 표출하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 세대갈등, 남녀갈등은 이제 심해지는 상황을 넘어 아예 고착되는 형국이다. 국내 국외 할 것 없이 모두가 대립과 분열 속에 있다.

불교의 화엄 철학을 대표하는 사상 중에 ‘사사무애관(事事無碍觀)’이 있다. ‘법계연기사상(法界緣機思想)’이라고도 하는데, 현상적으로 보면 천차만별로 각각 다르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보면 상호 연결된다는 뜻이다. 이를 화엄에서는 ‘인드라망’이라고 한다.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아무런 장애나 불편 없이 상생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를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라는 함축적인 말로 표현한다. 하나가 곧 전체요, 전체가 곧 하나라는 뜻이다.

봄이 오면서 온 천지에 꽃이 피어나고 있다. 갖가지 꽃들이 서로 뒤엉켜 있지만, 그들 사이에 다툼은 없다. 분명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지만(相卽相入·상즉상입), 아무 문제 없이 자라고 전혀 장애 없이(無碍·무애) 각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이처럼 개인, 국가, 민족이 서로 인정하고 공존하는 마음을 찾는다면 지금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모든 분쟁과 분열과 폭력과 증오는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다.

4월이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한다. T. S. 엘리엇은 그런 의미로 쓰지 않았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4월은 유독 잔인한 사건·사고가 많은 달이다. 멀게는 제주 4·3사건, 4·19혁명부터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까지 그렇다. 한 가지 다행인 건 4월에 곡우(穀雨)가 있었다는 것이다. 곡우는 청명과 입하 사이의 절기로 이때 쯤이면 봄비가 내려 작물에 싹이 트고 못자리를 내는 등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바라건대, 세계 도처에 ‘일즉다 다즉일’의 봄비가 내려 혼란스러운 마음을 향기롭게 씻어주면 좋겠다. 평화가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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