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향음<香音>이 가득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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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행 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지난 코로나 시국을 보내면서 ‘종교가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국민이 종교를 걱정하고 있다’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퍼뜩 어떤 종교인이 떠오르겠지만 어느 특정 종교와 종교인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모든 종교, 모든 종교인에 관한 이야기다.

20세기 전까지 종교는 지구인의 삶을 규정짓는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이후 양차 대전을 겪고 현대에 접어들면서 종교는 본질에 더 집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부처와 예수와 알라와 그 밖의 많은 신이 설파한 자비와 박애와 평화를 온전히 실천하자는 움직임이었다. 권위와 위엄을 벗고 더 낮은 곳, 더 고통받는 곳으로 내려가 종교의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지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무 늦다. 분명 방향은 바로 잡았으되 변화의 움직임이 너무 더디다. 그렇게 100년이 지나왔건만 여전히 종교를 걱정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으로 테러가 횡행하고, 속사정이야 어찌 됐든 손바닥만 한 땅을 사이에 두고 미사일을 퍼붓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종교와 관련한 추문이 끊이지 않는다. 종교인들은 아무래도 성직자와 관련한 일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성직자의 범죄는 매년 5,000건 안팎이 발생하고 있다. 줄어드는 추세도 아니다.

종교란 신령과 성스러움을 체득하고 실천해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가 그렇다. 만약 세상이 맑고 향기롭지 않다면 그건 종교인이 종교의 본질에 무지하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곡해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한 탓이다. ‘종교(宗敎)’라는 말은 원래 ‘근본이 되는 가르침’을 뜻하는 불교용어다. 그러니 우리는 잘못 배운 낙제생인 셈이다.

종교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 종교인구는 2004년 57%까지 다다랐으나 2023년 조사에선 36%까지 낮아졌다. 20년 사이에 21%나 줄어든 것이다. 젊은 층의 이탈이 클 것 같지만, 통계에 의하면 전 연령대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하는 게 아니다. 유럽에서도 종교인구가 급감하는 바람에 수백 년 된 예배당을 운영할 수 없어 일반에 판매하거나 임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운이 좋으면 도서관이나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변모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술을 파는 클럽으로 용도 변경되고 있다고 하니 전 지구적으로 종교의 위기다.

무엇보다 성직자가 중요하다. 성직자는 신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이자 대리인이다. 당연히 그 어떤 직종보다 탁월한 도덕성을 요구한다. 때문에 존경받는 성직자의 삶은 그 자체로 세상을 향기롭게 하고, 그가 입적하거나 선종에 들면 잠시나마 ‘무엇이 바른 삶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게 되는 것이다.

오대산 산중에 들어앉아 있지만, 소문이란 게 날개 달린 말과 같아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곳까지 들어온다. 최근에도 모 성직자와 관련한 사건이 선거를 앞두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이 이처럼 혼탁한데 같은 성직자로서 ‘무엇이 중요한가’ 자문해 본다. 과이불개(過而不改)라 했다. 허물을 보고 고치지 않는 것이 더 큰 허물이다. 오대산에서 허공에 대고 말 없는 말을 하니, 말 없이 듣고, 말 없이 살아갈 뿐이다.

날씨가 많이 풀리고 나뭇가지에 싹이 돋기 시작한다. 혼탁한 세상이 새 봄의 빗줄기에 씻겨 내려가 맑고 그윽한 향음(香音)이 가득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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