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산봉우리가 치솟기에// 창을 열고/ 고개를 든다.// 깎아지른 돌벼랑이사/ 사철 한 모양// 구름도 한 오리 없는/ 낙목한천(落木寒天)을// 무어라 한나절/ 넋을 잃노.’ 조지훈의 ‘추일단장(秋日斷章)’ 첫 부분이 어울리는 올가을이다. 산과 구름, 하늘을 바라보며 시를 읊고 계절을 만끽하고 싶어지는 때다. 낙엽 지는 소리는 어떤가.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를 성근 빗방울로 잘못 알고 밖에 나가보라 했더니 시냇가 나뭇가지에 달이 걸려 있었더라던 송강 정철의 옛 시는 한 폭의 수묵화다. ▼처서(處暑)가 지났다. 그리고 7일은 백로(白露)다. 가을의 기운이 완연한 백로는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됐다. 이 무렵 농가에서는 정성껏 지은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백로 전후에 부는 바람과 벼 이삭을 유심히 관찰해서 얻는 정보다. 벼는 늦어도 백로 전에 패어야 한다. 백로가 지나서 여문 나락은 결실하기 어렵다. 바람이 불면 벼농사에 해가 많다고 여기며 비록 나락이 여물지라도 색깔이 검게 된다고 한다. ▼추석을 앞두고 시름이 깊어진다. 물가 상승과 대출 이자 부담에 가계 여윳돈을 나타내는 올 2분기 ‘흑자액(1인 이상·실질)’은 월평균 100만9,000원으로 전년 대비 1만8,000원(-1.7%) 줄었다. 2022년 3분기부터 8개 분기 연속 감소세로 2006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소득보다 물가와 이자가 더 빠르게 오른 탓이다. 올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96만1,000원으로 1년 전보다 3.5% 늘었지만 물가 인상분을 걷어낸 실질소득은 435만2,767원으로 0.8% 상승에 그쳤다. ▼추석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는데 지갑이 갈수록 얇아지니 걱정이다. 고물가에 경기 침체로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는 힘들고 어려운 시기다. 장사나 사업이 이번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까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열심히 살았지만 죽도록 고생만 하고 손에 쥐는 것은 없을 것 같은 올해다. 답답해서 속이 터질 지경인데 정치는 국민을 더 실망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