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이
국시(國是·국민의 지지도가 높은
국가 이념이나 국가 정책의 기본 방침)
처럼 쓰일 때가 있었다.
1970년대 ‘쳐부수자 공산당’
만큼이나 마을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던 표어가 ‘체력은 국력’이었다.
국민의 체력을 국력과 등치시키던 시절이었으니
교육제도에 체력 증진과 관련된
항목이 포함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체력장(體力章)이다.
지금이야 상위 학교 진학을 하는 데
체력과 관련된 점수가 별도로
더해지지 않고 있지만
학생의 기초체력을 향상시킨다는
목적을 내세워 필수 점수로 포함시키던 때는
꽤나 신경 쓰이던 것이 체력장 점수였다.
사실 체력장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전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전쟁에 활용할 수 있는 군사자원으로서의 의미가 크기 때문에, 적절한 활용을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 체력에 대한 관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국민체력관리법안(國民體力管理法家)’을 시행하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나타난 일종의 트렌드 같은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3년 7월 휴전협정으로 전쟁이 중단된 직후인 1955년 문교부(현 교육부)가 나서 체격(몸의 골격)과 체질(몸의 생리적 성질), 체능(어떤 일을 감당할 만한 몸의 능력) 등 세 가지 검사 기준으로 학생들의 체력을 평가하는 ‘중학입시 체력검사기준’을 결정한다. 이러한 검사들은 단순한 자료용이 아닌 진학을 위한 점수로 활용됐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여간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이 시기에 체능(체력)검사에 대한 배점이 너무 높아 당락을 결정짓는 역할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1961년 중학입시 점수에서 배점을 살펴보면 총점 175점 가운데 무려 25점을 달리기, 넓이뛰기(멀리뛰기), 던지기, 턱걸이(여자는 팔굽혀펴기) 등으로 구성된 체능검사에 할애했으니 자칫 실수라도 할라치면 탈락을 감수해야 하는 살떨리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대학입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입시 마지막 고비 체능에 운명 걸고’ 제하의 기사(동아일보 1962년 2월15일자)를 보면 “앞으로의 판가름은 50점이 걸려 있는 체능검사 합격권에서 조금 떨어진 응시자들도 총점수의 칠분이 일이 걸려 있는 이 체능검사로 합격권을 뚫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쓰고 있어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의 체력 검정 기준이 재미있다. 육사는 신체검사와 학과시험으로 치러지는 1차 지구시험 합격자에 한해 2차 중앙시험(신체검사·체력검정·인물고사)을 12월 진행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 체력검정이 100m 달리기(16초 이내), 매달려 팔굽히기(4회 이상), 수류탄 던지기(30m 이상), 2,000m 달리기(9분30초 이내), 무게 들기(35㎏ 2회 이상) 등으로 구성(경향신문 1966년 10월1일 기사 참조)돼 있다. 던지기도 아니고 굳이 수류탄 던지기를 검정 종목에 넣은 것은 아무리 육사가 육군 초급장교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당시 시대가 준 살벌(?)함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본격적으로 체력장 제도가 시행된 것은 1972년부터다. 체력장 실시 종목에는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는데 보통 △윗몸 일으키기 △100m 달리기 △오래달리기 △멀리뛰기 △턱걸이(오래 매달리기) △던지기 등 6~8개 종목이 있었다. 각 종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진학에 큰 도움을 받았고,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이른바 특급·1급 학생들에게는 각종 혜택이 주어지곤 했다. 그러니 시쳇말로 죽기 살기로 체력장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체력장을 준비하거나 체력장에 임하다 사망하는 일들이 속출했다. 1977년에는 9월 한 달에만 전국적으로 17건의 사고가 발생해 4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1970년대 체력장 성적이 대입 예비고사 전체 성적의 5.7%를 차지하는 상황에서도 당국의 관리 미숙으로 시험관들이 제각각인 규정을 적용하는가 하면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일이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1979년 오래달리기 등 체력 소모가 심한 3개 종목을 체력장에서 제외시키기도 했지만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다시 부활하는 등 부침을 겪다가 대입은 1994학년도, 고입은 1997학년도에 차례로 사라지게 된다. 체력장을 대신해 2009년부터 초·중·고교에서 순차적으로 ‘건강체력평가(PAPS)’가 실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