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지방대 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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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화 사회부 기자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일을 하면서 괴로운 순간이 때때로 있다. 그 중 하나는 무책임한 단어로 점철된 문장을 남들보다 먼저 읽거나 심지어는 써야 할 때다. 이를테면 '젠더갈등,' '의료취약지,' 그리고 '지방대'.

'젠더갈등'이라는 단어가 억압의 권력관계를 교묘하게 지워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가린다면, 의료취약지라는 단어 안에는 피해자만 남아있고 사회구조는 없다. '의료취약지'는 수도권과 지방 사이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산물로 만들어졌거늘, 혜택을 보는 수도권 이야기는 오간데 없고 착취당하는 '지방'만 문제화된다.

'지방대'라는 단어는 주로 '위기'라는 단어와 결합하며 또 다른 차원의 불쾌감을 만들어낸다. 한국사회의 학력차별, 계급차별, 수도권 중심주의가 한 번에 합쳐져 '지방대 위기'의 담론지형을 만든다. 놀고 꿈꿀 청춘의 공간도, 사회초년생이 돼 사람답게 일할 직장도 모조리 서울로 빼앗아갔던 착취의 어제는 제쳐두고, 그 결과로 돈줄과 사람을 모두 뺏겨 힘을 잃은 지방의 오늘만 애물단지 취급하는 언설이다. 중앙정부는 그런 지방의 대학이 맞닥뜨린 문제를 '담대한 구조개혁'으로 해결하라고 윽박지른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지난 여름 정부가 디지털 인재 100만명을 양성하겠다며 헛물을 켤 때도 '지방대' 교육 현장 곳곳에서는 깊은 시름이 쏟아졌다. 기업 측에서 '지방대'출신은 서류 탈락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디지털 인재를 만드냐는 고민이었다. 뿌리깊은 학력차별 속에서 수험생들은 기필코 수도권 안으로 들어가리라 마음먹는다. '지방'을 선택한 사람들이 어떤 시선을 받는지, '지잡대(지방 소재 대학을 비하하는 말)'라는 폭력적인 용어를 제지하는 어른 하나 없이 학창시절을 보낸 청소년들은 너무나 잘 안다. 정부가 지방 소재 대학 중 세계적인 명문대를 육성하겠다며 시작한 '글로컬 대학' 사업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지역 대학 경쟁력 강화의 모델로 삼는 미국, 프랑스, 핀란드 중 그 어디도 이토록 공고한 수도권 중심 구조를 형성한 곳은 없다. 그래서 사실 '지방대 문제'는 '지방대' 문제가 아니다. 사람도, 물건도 서울로 향하는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서울대 문제'일 뿐이다.

요즘 한국인들을 밤 새게 만든다는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은 '연진'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동은을 학창 시절 괴롭힌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피해자인 동은은 항상 가해자들의 이름을 말끝에 붙여 시청자들이 잊을 수 없게 만든다.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기억하게 하는 힘. 이름의 효과다. 그래서 '지방대' 문제라는 이름은 나쁘다. 수도권의 지방 착취구조가 그저 '지방대 문제'로 남아 있는 한, 본질은 흐려지고 불평등한 구조는 순식간에 '지방'의 책임이 된다.

이제 '지방대 문제'라는 무책임한 이름 대신, 진짜 '가해자'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자본의 착취구조가 야기한 불형평과 차별, 그리고 이와 붙어 세를 불리는 수도권 중심주의가 바로 우리가 불러야 할 연진이들이다. 본질을 마주하지 않는다면, '글로컬 대학'사업도, 지방대학-지방정부 권한 이양 사업도 모두 정치적 책임 회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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