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청봉]횡성 토박이와 귀농·귀촌인의 '컬래버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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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렬 횡성주재 부국장

해마다 3월의 첫날은 만세 함성으로 시작한다. 올해 제104주년 3.1절도 그랬다.

일제가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침탈했던 역사가 오늘날 그 책임을 묻는 과정으로 진화해 진행형이다.

서슬퍼런 일제에 맞선 독립 만세 운동에서 횡성은 독보적인 역할로 ‘애국의 고장’이라 불린다.

도내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은 군중 항거가 있었던 횡성은 전국 만세 운동의 시발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삼일공원 등 곳곳에 선조들의 숨결이 남아있다.

영동, 동해안으로 통하는 길목이던 횡성은 상업이 발달했다.

식민지 수탈을 위해 일제는 전국 상권을 차례로 장악했다. 하지만 횡성과 황해도 개성 상권은 일제가 차지해자 못했다고 한다. 개성 상권은 워낙 규모가 컸기 때문이며, 횡성 상권은 상인들이 똘똘 뭉쳐 일제가 파고들 틈을 내주지 않았단다.

횡성 상권 장악에 실패한 일제가 패퇴해 물러갈 때 횡성에 대해 갖가지 모략과 부정적인 표현들을 했고, 이후 횡성은 자기네들끼리만 뭉쳐 텃세나 부리는 배타적인 지역으로 잘못 알려졌다.

횡성은 4만 6,000여명의 인구를 유지하고 유동인구도 적지 않다.

65세 이상이 32.7%에 달해 도내에서 가장 높은 초고령화율을 보이고 있다.

고령 인구가 많아 자연 감소 속도는 급격히 빨라지고 있지만 출산에 따른 자연 증가는 갈수록 미미하다.

인구가 유지되는 비결은 귀농·귀촌 등으로 횡성에 찾아와 정착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현역 은퇴자들이 휴식을 겸해 편안한 제2 인생을 꿈꾸며 전원 주택과 텃밭을 구해 이주하고 있다.

횡성군은 일찌기 귀농귀촌 관련 전담 부서를 만들고 독자적인 기구로 승격시켜 횡성에 정착하려는 외지인들을 맞이 하고 있다.

이 같은 지역 사회 변화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기 위해 전국 처음 ‘건(健)중년 도시’를 선포하고 65~70세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와 경제 활동을 장려하는 다양한 시책이 시도된다.

마을마다 귀농·귀촌인이 늘면서 곳곳에서 리(里), 반(班) 등 소규모 행정구역 개편 등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기사꺼리 제보를 하겠다며 전화나 브리핑룸을 직접 찾는 이들이 있다.

얘기의 시작은 대부분 몇년전에 횡성에 들어와 땅을 사고, 집도 짓고, 간단한 일거리를 만들어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본론에 들어가면 공무원들이 불친절하고, 권한을 너무 융통성 없게 행사하고, 이웃집과 사소한 다툼으로 못 살겠고, 길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고, 등등 하소연을 한다.

한술 더 뜨는 경우 “그 정도는 마을에서 오래 살아 온 사람들이 이해하고 포용해 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토박이들의 희생을 당연시 한다.

이런 경우 잠시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얼핏 들으면 그 말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은 인생 1막에서 성공을 거두고, 횡성을 찾아와 정착했으니 지금까지 횡성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을 존경하고, 위로하고, 잘 모시라는 얘기라면 동의할 수 없다.

토박이들도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왔다. 공무원들도 법과 규정대로 행정을 한다. 공정과 상식을 아는 민주 시민이라면 할 수 없는 이기적 주장이다.

토박이들은 조상 대대로 터전을 잡고 살아오면서 서로 서로를 잘 안다.

가문의 애증 관계가 있을 수 있고, 너무 잘 알기에 참고 이해하고 지낸다.

횡성에서 살기 위해 찾아 온 이들은 이런 면에서 휠씬 자유롭다. 자신이 말하고 행동하는대로 주변에 알려진다. 인생 경력도 얼마든 세탁이 가능하다. 토박이들을 이용해 자신의 잇속만 챙기기보다 이웃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먼저 실천해야 한다.

횡성 귀농귀촌 인구가 1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시대 흐름이다. 토박이와 이주민들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진짜 이웃으로서 화합적 결합이 이뤄져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때 지역 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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