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타임머신 여행 '라떼는 말이야~']솟아오른 바위에 상상을 더하면 거인·코끼리·양머리가 눈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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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풍경 속의 1970년대 동해 추암

◇1970년대 동해 추암 풍경, 추암 주변으로 작은 초가집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강원일보DB

동해추암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시작되는 애국가의 첫 소절의 시작 배경하면하면 떠오르는 장면이다. 조선시대 능파대로 불리던 곳으로 는지는 강원도내에 두 곳이 있다. 동해 능파대와 고성 문암항 주변 능파대다. 능파대가 언제 추암으로 바꿨는지는 정호가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동해시가 삼척시에서 분리되던 1980년 즈임일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의 석림 능파대 안내판은 "능파대는 인근의 하천과 피랑에 의해 운반된 모래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죽도) 및 촛대바위 같은 암석기둥(라피에)들을 포함한 지역을 총칭한다"고 적고 있다.

촛대바위는 물과 바람 그리고 시간 등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지형으로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촛대바위 주변은 보는 사람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잠자는 거인, 코끼리, 양머리 등 다양한 모양을 볼 수 있다.

추암 입구에 해암정이 단아하게 세워져 있다. 해암정은 1979년 5월 30일 강원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삼척심씨(三陟沈氏)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고려 공민왕 10년 삼척심씨의 시조 심동로(沈東老)가 낙향하여 건립한 정자로 알려져 있다. 심동로의 자는 한(漢)이요, 호는 신제(信齊)로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여 한림원사(翰林院使) 등을 역임했다. 고려 말의 혼란한 국정을 중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자 왕이 이를 만류하다가 동로( 東老: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뜻)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낙향한 이후 후학의 양성과 풍월로 세월을 보냈다. 왕은 다시 그를 진주군(眞珠君)으로 봉하고 삼척부를 식읍(食邑)으로 하사했다. 지금의 해암정(海岩亭)은 본래 건물이 소실된 후 조선 중종 25년(1530)에 어촌(漁村)심언광(沈彦光)이 중건하고, 정조 18년(1794) 다시 중수한 것이다. 건물은 낮은 1단의 석축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얹은 정자 형식이다. 4면 모두 기둥만 있고 벽면은 없다. 뒤로 지붕보다 조금 높은 바위산이 있어 운치를 더해 주며, 이곳에서 보는 일출은 장관이다.

◇당시 본보 취재기자들이 동해 추암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강원일보DB

지난 2019년 6월 설치한 출렁다리는 바다 위를 걷는 느낌을 준다. 길이 72m, 폭 2.5mㅇ의 다리는 돌과 바다 위를 하늘에서 조망하게 만들어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출렁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여행의 품격을 높여주기도 한다. 능파대와 해암정이 한눈에 들어와 눈맛을 말깔나게 해준다. 아담한 크기의 추암 해변도 그림 속의 장면처럼 정겹게 다가온다.

◇일출 명소로도 유명한 동해 추암 촛대바위. 강원일보DB

지금은 추암 해변 주변으로 횟집, 오토캠핌장, 편의점들이 한 줄서기를 하고 있지만 1970년대는 작은 집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능파대 언덕 위엔 소나무들이 손 가락으로 셀 만큼의 숫자 만 보인다. 그 앞으로 초가집과 슬레이트, 기와집 6채 정도가 보인다. 허리 보나 높을 듯 말 듯한 담장도 친근해 보인다. 담장 너머로 안살림이 다 보인다. 바다로 향하는 방향엔 바위 들이 성난 파도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드리 내고 있다. 그 사이 빨래하는 아낙이 앉은 자세로 바쁜 손을 놀리고 있다. 멀찍이 한 아이가 떨어져 서서 아낙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모자 사이로 보기엔 거리가 넘 멀어 친근감이 없어 보인다. 현대식 건물은 사람의 시선을 억눌러 잠깐만 보아도 불편해지곤 한다. 그러나 옛 풍경은 시선을 거슬리는 건물이 없어 눈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김남덕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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